inspiration

몇 페이지 7

iamsera 2018. 1. 30. 12:46


무언가가 너무 늦었다고 믿고 싶은 사람은 없겠지만,

언제나 조금씩 더 늦어지고, 

그러다보면 마침내 너무 늦어버린 순간이 온다.

_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버지스 형제




내 첫 이름은 '오해'였다.

그러나 사람들이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나를 점점 '이해'로 만들어 주었다.

_김애란, 침묵의 미래, 바깥은 여름




우리가 함께 걸었던 거리들을 떠올려본다. 건대입구와 강남, 이태원의 곳곳들, 더러운 것도 쓸쓸한 것도 많은 거리들이었다. 그럼에도 함께여서 좋았던 곳들이었다. 어느 새벽에는 무서운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걷기도 했었다. 깜짝 놀라는 걸 싫어하는 이에게로의 기담들, 그게 재밌을 리가 없었겠지만 당신은 그래도 무섭다며 내 손을 꽉 잡아주었다. 우리는 그렇게 손을 잡고 걸었다.

사람은 잘 안 변한다지만 알게 모르게 많은 것들은 변한다. 마냥 초라했던 낡아빠진 간판들이 어떤 날엔 운치 있어 보이기도 했다. 겹겹이 가짜였던 나도 하루씩 날것으로 네게 다가갔다. 슴슴한 사탕 하나도 달아 못 먹었던 내 단맛의 역치는 몇 입의 길거리 와플들로 부쩍 높아졌다. 탕후루라고 하는 씹을거리를 너와 함께 먹어봐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내 변태 같은 호기심들도 네게 귀엽게 가 닿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도 다르겠다. 너도 다르겠다. 그래도 우리는 사랑이겠다. 우울이랄지 걱정거리가 누군가에겐 안아줄 거리가 되고 들어줄 거리가 되는 것처럼. 비가 올 거라는 소식에 우산을 선물할 수 있겠다며 기뻐할 수 있는 것처럼.

시력을 잃는다면 목소리로 글을 쓰고 싶다. 나는 네가 그걸 받아적어 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도 당신의 결핍들을 맛있게 먹어주고 싶다. 서로 다른 둘이 서로 다른 아픔을 핥아줄 수 있길 바란다.

_오휘명, 길거리




말을 안 해도 외롭고,

말을 하면 더 외로운 날들이

이어졌다.

_김애란, 침묵의 미래, 바깥은 여름




하지만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다면, 그게 아무리 형편없는 상대라 해도, 그쪽이 나를 좋아해주지 않는다 해도,

적어도 인생은 지옥이 아니다.

가령 약간 암울하더라도.

_무라카미 하루키, 1Q84




어떤 사람의 얼굴엔 흉이 있었다. 그는 어릴 적 지독한 홍역을 앓았을 때의 손톱자국이라고 대답했다. 몇몇 일들은 그런 방식으로 기록된다. 전쟁을 겪은 세대의 눈동자에 알 수 없는 허무가 깃든 것처럼. 나의 얼굴엔 없음이 있다. 미아가 미아가 되고 시간이 많이 흘러 길거리에 익숙해진 것처럼, 울음을 그친 것처럼, 어떤 당황도 다급함도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비린내 나는 물을 쏟고 나면 빈 잔이 남는다. 물은 어디론가 떠났겠지만 잔만은 남는다는 거다. 없음은 그런 식으로 존재한다. 그런 식으로 너는 나를 미아로 만들었고 없음이라는 사탕 하나를 먹여주었다.

내게 흉이 온전히 지기 전에, 그러니까 피가 울컥거리고 내가 다급했을 때, 나는 제발 아물어, 아물어달라고 며칠을 소리쳤었다. 그리고 이제 나는 속삭인다. 그래, 아무런, 아무런···

아무도 들이지 않는 방이 생겼다. 청소할 의욕 따윈 없다.

번화가는 오늘도 번화했지만 나는 거리 위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다.

_오휘명, 아무도




오늘은 오랜만에 망원동에 가고 싶은 날입니다. 내가 당신을 망원동에 데려간 적이 있었던가요? 거기에 좋은 게 얼마나 많은데요. 저번에도 말했잖아요. 정말 분위기 좋은 막걸릿집이 있고 시간이 멈춰 있는 것처럼 평화로운 카페도 있어요. 망원 한강공원에는 사랑 냄새가 늘 가득하고요. 정말이지 좋은 게 얼마나 많은데요, 사랑은 끝났지만요. 아무리 생각해도 망원동에 가고 싶은 날이에요. 잊고 있었던 작은 행복들이 그리워졌다는 말이에요. 나는 그렇게 소소히 행복해질래요. 그러니 이제 당신도 다시 행복하세요. 아니, 어쩌면 이미 행복하신가요? 모르겠습니다. 좀 쉬고, 놀기도 놀고, 망원동에도 한 번쯤은 가보세요. 마주치면 우리 눈인사해요.

최악의 사람이셨어요. 누군가가 내 사랑과 슬픔의 시간들을 보고, '마음에 한차례 비가 내렸었구나. 그걸 흠뻑 맞은 거구나.'라고 말하기도 했을 정도로요. 그렇지만 오래오래 기억하고 응원할게요.

최악이었지만 최고로 소중하셨다고. 소소함 아닌 거대한 행복을 주는 사람이셨다고요. 왜 그렇잖아요, 원래 난 비 오는 날을 좋아했잖아요. 당신도 알잖아요.

_오휘명, 외출




이 낯선 도시에서 일 년이 넘도록 누구도 깊이 사귀지 않고 살아왔다. 일 년 동안 누구도 받아들이지 않는 건 거울이라고는 전혀 없는 벽의 세상에서 사는 것과 비슷하다. 자신의 존재에 대한 반향이 없는 삶. 

_전경린, 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




한 마디를 듣기 위해 종일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었다.

_이훤, 어떤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