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piration

몇 페이지 8

iamsera 2018. 2. 26. 19:48


타인을 견디는 것과 

외로움을 견디는 일 

어떤 것이 더 난해한가 


다 자라지도 않았는데 늙어가고 있다 

그러나 감상은 단지 기후 같은 것


_허은실, 목없는 나날 중






트라우마의 경험은 스트레스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체질로 바꾸어 놓는다. 트라우마가 많은 사람은 그만큼 상처에 단련되어 그런 경험이 적은 사람보다 상처를 더 잘 극복할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상처를 경험한 사람이 더 아프다. 반면 부모의 따뜻한 보살핌을 받고 상처를 적게 받으며 자란 사람이 스트레스에 잘 대처한다. 어린 시절 트라우마를 많이 받은 사람은 스트레스를 잘 해소하지 못하고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이들은 스트레스 대처 시스템에 손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자신이 성장한 가족으로 회귀하려고 한다. 설령 그 가족이 비참했고, 늘 외로웠으며 불안했을지라도. 그곳은 너무나 익숙한 곳이기 때문이다.

_최광현, 가족의 두 얼굴






이십대는 감정 과잉과 열망이 엉킨 소란한 시기다. 많은 젊은이들에게 슬픔은 죽음과 맞닿은 듯한 슬픔이며, 걱정과 불안이 고약하게 활개를 치는 시기이다. 고래떼 같은 격정이 몰려오거나 침대를 휘감고 사라지는 파도 앞에서 젊은이들은 슬픔의 먹이가 되는 일이 많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슬픈 일들은 유독 나를 통해 뿌리내리고 싶어하는 것 같아 보이던 그 시절. 멍하니 앉아 있으면 사람들로부터 왜 우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눈물이 흐르지 않는데도 우는 것처럼 보였던 시절, 시엔처럼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울던 저녁도, 바닥에 엎드려 시를 쓰다가 괴로움에 몸부림치던 새벽도 있었다.

_박연준, 소란






안과 밖의 온도 차로 흐려진 창가에서 "무심은 마음을 잊었다는 뜻일까 외면한다는 걸까" 낙서를 하며 처음으로 마음의 생업을 관둘 때를 생각할 무렵 젖는다는 건 물든다는 뜻이고 물든다는 건 하나로 섞인다는 말이었다. 서리꽃처럼 녹아떨어질 그 말은. 널 종교로 삼고 싶어, 네 눈빛이 교리가 되고 입맞춤이 세계가 될 순 없을까. 차라리 나는 애인이 나의 유일한 맹신이기를 바랐다.

잠든 애인을 바라보는 묵도 속에서 가져본 적 없는 당신이란 말과 곰팡이 핀 천장의 야광별에 대한 미안함이 다 들어 있었다. 그럴 때 운명이란 점심에 애인이 끓인 콩나무국을 같이 먹고, 남은 한 국자에 밥을 말아 한밤에 홀로 먹는 일이었다. 거인의 눈동자가 이쪽을 들여다보는 듯 창밖은 깜깜. 보풀 인 옷깃 여미며 서둘러 떠나갔을 애인의 거리는 막막하고 사물들은 저마다의 풍속으로 어둠에 잠기는데.

어디서 온 것일까. 환기한 적 없는 집안의 먼지들은.

_이현호, 붙박이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