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오늘 209

기다림

분명 울고 있지 않는데도 울고 있는 빌리. 화병에 꽃을 꽂을 여유 따위 없는 지친 마음으로 미술관엘 간다. 평일의 전시가 으레 그렇듯 방해 받지 않고 홀로 감상을 한다. 오늘 비가 온다고 했었나 우산이 없는데. 설렁설렁 작품들 사이를 거닌다. 소리가 나지 않는 카메라로 전시장 일부를 담는 동안에도 나는 다른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다. 옷걸이 팔천개를 엮은 조형물 앞에 우두커니 서서 작가의 의도와 작품의 의의보다는 그저 이걸 만드는데 얼마나 걸렸을까 한다. 우리는 시간의 힘을 빌려 많은 것을 하지만, 시간을 들여도 해결될 수 없는 것도 있다 는 진리를 나이를 먹어가며 차츰 깨닫는다. 맨투맨 손목의 앙증맞은 체리에 시선을 둔다. 어리다. 그의 SNS엔 애들은 싫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그래서 난 재잘거리는 ..

나의 오늘 2021.04.28

산책

신경 쓰이는 사람이 sns에 모습이 보이지 않거나 시큰둥한 반응을 하는 날엔 어김없이 작아지는 내가 있다.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닐까 쓸데없는 걱정도 하며 관계에 관한 글을 잔뜩 읽는다. 튼튼한 몸에 열악한 마음이 깃든다는 게 무엇을 뜻하는지 깨닫는다. 점점 몸도 성치 않아지고 피폐한 정신 상태로 주위 사람들에게 쉽사리 짜증을 내곤 한다. 겨우 옷을 주워입고 바깥으로 나가 바람을 쐬며 생각한다는 것이, 또 같을 때는, 꼭 내가 무슨 병에 걸린 것처럼 느껴진다. 맹목적인 로봇처럼 한가지만 입력되어 설계된 것만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사랑엔 고독과 그리움만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처럼 그의 답글이 오면 나는 공원에서 걷다가, 마냥 기쁜 나머지 입을 막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리는 것이다.

나의 오늘 2021.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