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piration

누벨 이마주 [nouvelle image]

iamsera 2017. 8. 4. 10:12

누벨 이마주 [nouvelle image]



새로운 이미지를 추구한 1980년대 프랑스 영화감독들의 작품 경향을 일컫는 말.



누벨 이마주란 프랑스어로 '새로운 이미지'라는 뜻이다. '누벨 바그'가 상당히 구체적인 활동이었던 데 비해 '누벨 이마주'는 그만큼 전세계적으로 고유명사화된 용어는 아니며, 주로 장 자크 베네(Jean-Jacques Beineix)·뤽 베송(Luc Besson)·레오 카락스(Leos Carax) 같은 프랑스 감독들의 1980년대 작품을 언급할 때 사용된다.


이 감독들은 또한 '시네마 뒤 룩(cinema du look)'이라는 용어로 분류되기도 하는데, 이는 이들이 영상으로 표현되는 이미지에 큰 비중을 두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들은 '누벨 바그'의 감독들, 그 가운데서도 특히 고다르를 습득한 세대들인 동시에 할리우드 액션영화와 텔레비전 광고·만화·뮤직비디오 등을 보면서 자란 세대들로서, 시각미와 시각효과에 대해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이들은 아주 기교적인 영상을 만들어내기 위하여 세트·조명·촬영 등에 매우 인공적인 방법과 장치를 동원하였다. 주로 실내에서 영화를 촬영하고 색채적인 화려함이나 인물의 내면을 기점으로 한 사건 서술 등의 특성을 보이는데, 이것이 바로 '누벨이마주'의 대표적인 경향이라고 할 수 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레오 카락스의 《소년, 소녀를 만나다》 《나쁜 피》, 장 자크 베네의 《디바》 《베티 블루》, 뤼크 베송의 《마지막 전투》 《그랑블루》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초기 작품들 이후 이들은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영화를 만들어나가면서 '누벨이마주'의 역사는 일단락되었다.


출처: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220549&cid=40942&categoryId=33091




누벨바그(Nouvelle Vague) 누벨이마주(Nouvelle Image)



누벨바그와 누벨이마주는 영화의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사조들이다. 일단 누벨바그 자유롭게, 혹은 제멋대로 흔들리는 카메라와 거친 편집으로 만들어진 영화들을 가리키는 말인데 프랑스의 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에서 평론가로 활약하던 장 뤽 고다르, 프랑스아 트뤼포 등이 대표적인 감독이다. 실존주의 철학에 근거한 사상적 배경과 프랑스 문학의 특성인 이야기 서술의 개방성을 특징으로 하는 '누벨바그'는 장 뤽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나 프랑스아 트뤼포의 <피아니스트를 쏴라>, 알랭 레네의 <지난해 마리앙 바드 에서>등의 대표작이 있다. 특히 <네 멋대로 해라>의 경우 불규칙하게 단절되는 편집과 촬영 기사의 손에 들고 찍는 핸드 헬드 카메라의 사용으로 유명해진 영화이고 세트에서 제한받지 않고 주로 외부에서 촬영된 '누벨바그'의 전형적인 영화이다.


'누벨이마주' 는 누벨바그의 특성에 반하는 영화 사조로 80년대 이후 데뷔한 프랑스 감독들의 영화를 정의하는 용어이다. 레오스 카락스, 장 자크 베넥스 같은 감독들주로 실내에서 영화를 촬영하고 색채적인 화려함이나 인물의 내면을 기점으로 한 사건 서술 등의 특성을 보이는데 이러한 것은 '누벨이마주'의 대표적인 경향이다. 레오스 카락스의 <나쁜 피>나 장 자크 베넥스의 <디바>, <베티 블루>처럼 CF를 연상케 하는 정교한 화면이나 원색적인 빛깔의 남용 등이 '누벨이마주' 영화를 정의하는 좋은 예일 것이다.


81년 장 자크 베넥스의 <디바>가 나왔다. 84년에는 뤽 베송의 <마지막 전투>와 레오스 카락스의 <소년, 소녀를 만나다>가 나오자 이윽고 어떤 '수상한' 흐름이 뚜렷해 졌다. 이 세 감독의 영화는 주제가 제각각이었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스튜디오 촬영을 무시하고 거리에 나가 영화를 찍은 50년대 말의 누벨바그 영화 이래 한 동안 프랑스 영화계가 잊고 있던 인공광의 세계, 다시 말해 스튜디오에서 잘 통제된 화려한 형식미를 선보였던 것이다.


프랑스 평간은 카메라에 비친 대상을 꾸미는 데 각별한 신경을 쏟는 이 새로운 스타일 리스트들에게 주목했다. 베넥스의 83년 작품 <하수구에 든 딸>에 나온 독특한 인공광의 세계는 기존의 프랑스영화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것이었다. 10대 시절 시네마테크에서 독일 무성영화에 심취했던 레오스 카락스는 비상한 시각적 감각으로 무성영화의 몽상적인 분위기를 자기 영화에서 자주 보여주었다. <소년, 소녀를 만나다>에 이어 내놓은 <나쁜 피>의 실내장면에는 뭐라고 말 할 수 없는 꿈꾸는 듯한 공기가 흘렀다. 


베송은 85년에 만든 <서브웨이>에서 지하철의 실내공간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펼쳤다. 그러나 처음에 이들을 예의주시하던 프랑스 평간은 차츰 이들을 외면하기 시작했다. 가장 빠른 속도로 자기 색깔 을 잃어버린 감독은 장 자크 베넥스였다. <베티 블루>이후에 베넥스는 89년 <로잘린과 사자들>이라는 믿기 힘든 태작을 내놓았고 92년에 발표한 <IP 5>도 조용히 묻혀버렸다. 베송도 마찬가지. <레옹>에 이르면 베송에게 '새로운' 수식어를 달기는 힘들게 됐다. 그리고 베송은 마침내 프랑스식 만화감각으로 할리우드의 SF영화 영역을 넘본 <제5원소>를 칸영화제에 출품했다. 


세 감독 중 카락스는 가장 극적인 부침을 겪었다. 91년 발표한 <퐁네프의 연인들>은 영화사를 도산에 빠뜨리기도 하면서 3년여 만에 제작됐다. <퐁네프의 연인들>이 촬영되는 동안 프랑스 언론은 곧잘 이 촬영 현장을 생중계할 정도로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퐁네프의 연인들>의 화면은 웅장했고 시각스타일은 여전히 반짝거렸지만 화면의 만듦새에 비하면 카락스가 이야기를 꾸미는 상상력은 너무 볼품이 없었다. 카락스를 지원했던 <카이에 뒤 시네마>는 망설였다. <카이에 뒤 시네마>는 카락스 특집판을 냈지만 내부에서는 이견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카락스는 그후 잠시 영화계를 떠났고 자신의 꿈을 책으로 써서 먹고 살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1997년 칸영화제에 단편영화를 들고 다시 나타났다.


프랑스 평단이 80년대의 세 스타 감독에게 내리는 평가는 가혹한 편이다. <카이에 뒤 시네마>의 편집장이었던 세르주 다네이는 '80년대는 프랑스영화계에 전혀 의미가 없는 시대였다'고 말했다. 세르주 투비아니는 이들의 영화가 겉만 화려하지 실속은 없는 속빈 강정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그들의 인상적인 쇼는 역설적으로 프랑스영화계가 여전히 영화 스타일의 보고하는 점을 환기시켰다. 90년대의 프랑스영화계는 그들보다 더 화려한 스타일, 아니면 스타일을 버린 무색무취한 스타일의 영화로 양분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80년대와 90년대의 프랑스영화계가 영 인연의 끈이 없었던 건 아닌 셈이다.


출처: http://cglink.com/terms/8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