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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

iamsera 2023. 4. 22. 14:58

비극의 여주인공 테스는 너무나 아리따운 외모 덕분에 파멸한다. 가는 곳마다 남자가 치근덕.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녀는 자신의 가문이 더버빌이라는 먼 옛날 기사의 집안임을 동네 목사에게서 전해 듣는다. 테스의 아버지는 본디 천성이 게을러서 일은 하지 않고 더버빌 가문의 위대함을 자랑하고 다닌다. 테스는 그런 아버지와는 다르게 동생들을 위해 열심히 일한다. 


아리따운 외모 
아버지는 본디 천성이 게을러서 일은 하지 않고 -을 자랑하고 다닌다 그런 아버지와는 다르게 동생들을 위해 열심히 일한다 동생과 일을 나간 수는 잠시 조는 바람에 그만 집에 있던 유일한 말을 사고로 죽이고 만다 당장 먹고 살 길이 막막해진 수의 집. 수의 부모님은 옆동네에 있는 더버빌집안에 가보라고 한다. 그들은 틀림없이 친척이므로 도움을 줄 것이라고 확신했기에 하지만 그 집안은 더버빌가문을 사칭하는 가짜였다 알렉더버빌이라는 바람둥이는 수의 외모에 반하여 그를 범하고 떠난다 -는 사생아를 낳게 되지만 그 아이는 곧 죽어버린다 그 누구보다 순수하고 순결한 처녀였지만 당신의 인습은 여자의 정절을 무엇보다 중시했다 주위의 시선에 견딜 수 없어진 수는 자신을 모르는 저 먼 곳까지 가서 일을 한다
그곳에서 만난 목사관의 막내아들 에인절을 만난다 그 청년은 지난날 수네 동네에서 열린 작은 축제에 참가한 젊은이인데 당시 수와 춤을 추지 않아 수가 아쉬움에 기억하고 있었다 아무튼 예상대로 에인절은 수에게 반하여 끊임없이 구혼한다 그리고 신혼 첫날밤 자신의 과거를 모두 털어놓는다 남편이라면 그녀의 한결같은 사랑을 알고 있기에 용서해주리라 믿고 하지만 에인절 또한 시대의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인간이었다 결국 그는 수를 버리고 브라질로 떠난다 
이에 수는 더욱 심한 가난을 겪게 되고 개과천선한 알렉더버빌은 또다시 그의 외모에 반해버린다 알렉은 지난날의 잘못을 용서받기 위해 그를 아내로 맞아들이려 한다 수는 공에 대한 사랑으로 거절하나 가족의 생계를 위해 결국 알렉과 결혼한다 때마침 공은 수가 자신에게 보낸 애정어린 편지들(너무 늦게 도착했다)을 보고 귀국하는데 이미 수는 결혼한 후였다 돌아온 공을 보고 수는 남편이 결코 돌아오지 않을 거라 이간질했던 알렉을 살해한다 그리고 다시 남편에게 돌아가 둘만의 행복을 닷새간 누리다 처형당하고 만다

1891년 발표. 이 작품의 정확한 제명은 <더버빌가의 테스>이며, ‘순결한 여성성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여주인공 테스는 몰락한 농가의 딸이다. 명문가의 후예라고 자칭하는 청년 알렉에게 유혹되어 사생아를 낳지만 곧 사망하여 남몰래 매장한 다음, 타향으로 돔아가 농장에서 젖짜는 일을 하며 갱생의 길을 찾는다. 몇 년이 지나, 농장 경영을 지망하는 목사의 아들 엔젤과 사랑하게 되어 그와 결혼한다. 결혼 첫날밤, 남편이 자기의 과오를 고백하자 테스도 자기의 과거를 고백한다. 엔젤은 이를 용납지 않고, 그녀를 버리고 브라질로 가버린다. 그 후 테스는 부모형제가 마을에서 쫓겨나자 이들을 구하기 위해 알렉을 다시 만나 동거하게 된다. 그때 뜻하지 않게 엔젤이 돌아온다. 격정에 사무친 테스는 엔젤과 자신을 갈라놓은 장본인인 알렉을 살해한다. 테스는 잠시나마 엔젤과 행복한 사랑을 누리지만 얼마 안 가 추격자들에게 체포되어 처형된다.
작자는 이 작품에서 남자의 에고이즘과 도덕적 편견, 사회적 인습에 희생된 불행한 여자의 모습을 묘사하는 동시에,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의 장난을 극적인 플롯으로 표현하려고 하였다. 오늘날 하디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할 뿐 아니라, 영국 문학 사상 19세기 후반의 대표작의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영혼이 몸 밖으로 나가는 것을 쉽게 느낄 수 있는 방법은……”하고 테스가 하던 말을 계속했다. “밤에 풀밭에 누워 크고 밝은 별을 똑바로 쳐다보는 거예요. 그 별에 정신을 쏟아붓고 있으면 곧 내가 내 몸에서 수천 킬로미터나 떨어져 나가 있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그런 일이 전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 같지만요.”




제 1단계 처녀

첫 문장 15페이지
5월 하순 경 해 질 녘에 중년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섀스턴을 출발해 블레이크모어 혹은 블랙무어라고 하는 인근 골짜기에 자리 잡은 말롯 마을의 집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26페이지
이들 모두가 햇볕으로 몸이 따뜻해졌듯이, 각자 자신의 영혼을 따뜻하게 해주는 마음속의 작은 태양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꿈이든, 사랑이든, 취미든, 아니면 아득하고 먼 최소한의 희망이든, 이뤄지지 않고 사라질지라도 그것은 희망이 그렇듯 그대로 이어졌다.
67페이지
잘 판단해서 계획한 일도 잘못 실행하면 뜻한 바를 이루기 어렵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때 만나기는 아주 어렵다. 자연은 불쌍한 피조물이 보는 것만으로 행복을 얻을 수 있는 순간에도 그에게 “보라!”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숨바꼭질이 지루하고 낡아빠진 장난이 될 때까지, “어디 있어요?”라는 인간의 질문에 “여기”라고 답해주지 않는다.

 

제 2단계 처녀 이후

124페이지
…이즈음 테스는 산책도 해가 진 뒤에 했다. 숲에 있을 때가 가장 외롭지 않았다. 그녀는 빛과 어둠이 대등하게 균형을 이뤄, 낮의 압박감과 긴장감이 서로를 중화하여 완벽한 정신적 자유가 허용되는 어스름의 순간을 한 치도 틀리지 않게 집어낼 수 있었다. 바로 그 순간 살아있다는 고뇌가 줄어들 수 있는 한 줄어들어 최소화되었다. 그녀는 유령들이 두렵지 않았지. 오로지 사람들, 혹은 세상이라 불리는 차가운 집합체를 피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세상은 전체로서도 끔찍하지만 소단위로서도 무섭고 비루했다.
143페이지
그녀가 느끼는 불행의 대부분은 그녀의 인습적 면모가 만들어낸 것이지 그녀가 마음으로 느낀 것은 아니었다. 테스의 논리가 무엇이었든 간에 어떤 기백이 테스로 하여금 예전처럼 단정하게 차려입고 밭일을 하러 나가게 만들었다. … 그래서 그녀는 품위 있게 처신했고, 아기를 팔에 안고도 이따금 사람들의 얼굴을 정면으로 지그시 응시했다. 
인습적이란 사회규범, 기대, 관습, 권위에 순응하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역할 동조적인 도덕성이라고도 한다. 인습적 수준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견해와 입장을 이해할 수 있다. 10세 이상의 아동, 청소년, 대다수의 성인이 인습적 수준에 해당한다.
154페이지
1년을 지내면서 중요한 날들의 의미를 곰곰이 음미해 보기도 했다. 체이스 숲의 어둠을 배경으로 몸을 버린 트랜트리지에서의 끔찍했던 밤, 아기가 태어난 날과 죽은 날, 자신의 생일, 그리고 자신의 행위로 개별적인 의미를 갖게 된 나날들. 어느 날 오후,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들여다보던 테스는 불현듯 이런 날들보다 더 중요한 날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모든 아름다움이 사라져 버릴 자신의 기일이었다. 한 해의 다른 날들 가운데 슬그머니 숨어 있어 테스가 매년 그날을 지나 보낼 때 신호를 보낸 거나 내지 않는 날 -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는 날. 그날은 언제일까?
155페이지
과거의 기억이 없는 곳에서라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과거와 과걱에 부속된 모든 것에서 벗어나려면 그것을 지워야 하고, 그러자면 떠나는 수밖에 없었다.

 

제 3단계 회복

184페이지
그는 이전에 친했던 사람들과 멀어졌고, 인생과 인간성에서 뭔가 새로운 것을 발견했다. 그다음 단계로 예전에는 그냥 막연하게 알고 지냈던 자연현상들 - 계절마다 달라지는 분위기, 아침과 저녁, 한밤과 대낮, 다른 기질을 가진 바람들, 나무들, 강물과 안개, 그늘과 고요, 그리고 무생물들이 내는 소리와도 친숙해졌다. 
200페이지
밝기의 정도가 같을지라도 동틀 무렵의 어중간한 회색빛은 해질녘의 어중간한 회색빛과 다르다. 아침의 박명에는 빛이 살아 움직이고 어둠이 무기력해진다면, 저녁의 박명에는 살아 움직이며 커져가는 것은 어둠이며, 거꾸로 움직임이 둔해지는 것은 빛이다. 

 

제 4단계 결과

237페이지
…삶의 크기는 외적인 위치가 아니라 내적인 경험에 좌우된다. 감정이 풍부한 농부가 둔감한 제왕보다 더 폭넓고 풍요로우며 극적인 삶을 산다. 이런 시각을 갖게 되면서 그는 이곳에서의 삶이 다른 어느 곳에서의 삶과 마찬가지로 중요함을 알게 되었다.
237페이지
테스에게 온 세계는 그녀의 감각에 달려 있고, 또 그녀의 존재를 통해 다른 모든 사람도 존재했다. 테스에게 우주는 오직 그녀가 태어난 바로 그해, 바로 그날 존재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336페이지
대가를 치르지 않고 전부를 가진다는 것은 나쁜 짓이다. 그녀는 마지막 한 푼까지 대가를 치를 것이다. 지금 당장, 그에게 손을 잡힌 채 불 속을 들여다보며 그녀는 최종 결론을 내렸다. 

 

제 5단계 여자, 대가를 치르다

441페이지
하지만 그녀의 슬픔이 구체적인 모습으로 나타난 곳이 바로 그 골짜기였기 때문에 그전처럼 그리운 마음이 일지는 않았다. 그녀에게 아름다움은, 경험해 본 사람이면 다 알 듯, 사물의 속성이 아니라 사물이 표상하는 것에 달려 있었다.

 

제 6단계 개심자

481페이지
“…널 하찮게 생각할 수 없었던 건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넌 너 자신을 지켰기 때문이야. 상황을 파악하자마자 넌 단호하게 내 곁을 떠났어. 내 멋대로 하게 놔두지 않았지. 이 세상에서 내가 경멸할 수 없는 단 하나의 여자는 바로 너야…”

 

제 7단계 완료 

581페이지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 말아요.”
590페이지
“에인절, 난 거반 기쁘기까지 한 걸요. 그래요, 기뻐요! 이 행복이 지속될 수는 없어요 - 너무 큰 행복이라 - 이걸로 충분해요. 이제 당신이 날 멸시할 때까지 살지 않아도 되겠네요.”
마무리
정의가 실현되었다. 아이스킬로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신들의 장이 테스를 갖고 노는 장난을 마쳤다. 더버빌 가문의 기사들과 귀부인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무덤 속에 잠들어 있었다. 말없이 지켜보던 두 사람은 마치 기도를 드리듯 미동도 하지 않고 한참을 땅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깃발은 계속 소리 없이 휘날렸다. 기운을 차리자마자 두 사람은 일어나 다시 손을 잡고 갈 길을 갔다.  

 

토마스 하디의 [테스]와 비극의 해석학

이 글은 비극문학을 통해 인생의 불행에 대한 철학적 해석학을 전개하고자 한다. 즉 불행과 고통으로 가득 차 있는 인생의 현실에서 그러한 고(苦)의 본질을 철학적으로 해석하고자 하고, 이를 위해 한 가련한 여인의 사랑과 파멸을 그린 T. 하디의 [테스]를 그 분석대상으로 삼는다. 따라서 이 글은 비극작품을 해석학적으로 고찰함으로써 인생의 본질로서의 비극에 대한 철학적 해명에 이르고자 한다. 

우선 T. 하디의 [테스]는 형이상학적 비극이다. D.H.로렌스는 소포클레스, 셰익스피어, 톨스토이의 위대한 비극들은 형이상학적 비극이라고 언급하고, [테스] 또한 그러한 비극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평가한다. 즉, [테스]는 형이상학적 비극으로써 왜소한 개인과 거대한 배경이라는 이중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테스]에서 테스를 불행하게 만드는 조건은 사랑과 도덕성이다. 테스가 갖는 불행의 조건은 가난이나 가족의 무지와 같은 외적인 것도 있지만, 그보다 본질적인 것이 그녀의 사랑과 도덕성과 같은 내적인 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즉 테스는 알렉과 에인젤의 사랑 때문에 점점 가속화되는 불행 속으로 내몰리고, 급기야 순수한 사랑에 대한 고지식한 믿음이라는 도덕성 때문에 스스로를 파괴하는 파국으로 치닫고 만다. 

이렇게 [테스]가 보여주는 형이상학적 비극은, 곧 개인적 사건 속에서 우주적 슬픔을 노정하는 존재론적 비극이다. 존재론적 비극은 하나의 비극 사건에서 한 인간의 부분이 아니라 그의 존재론적 조건 전체가 관계하는 데서 드러나는 슬픔을 통해 형성된다. 즉 존재론적 불행과 그에 따른 족재론적 슬픔을 담지하고 있는 것이 존재론적 비극이다. 그리고 이러한 비극은 리쾨르의 신화분석에서 두 개의 모신화, 즉 아담의 신화와 욥의 신화로 대변될 수 있다. 이러한 모신화는 저질러서 드러난 이차적인 악의 배후에 저지르지 않았지만 내재된 일차적인 악, 즉 악의 뿌리에 대해 함축하고 있다. 특히 욥의 신화에서 이러한 악의 뿌리는 결백한 자의 신비를 드러낸다. 그리고 이러한 악의 신비시학 속에 비극의 본질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비극의 본질은 바로 고난의 총체적 수용, 즉 칸트적 의미의 선의지처럼 불행에 대한 의지에서 발견되는 게 아닐까 한다. 다시 발해서 인간의 존재조건에 주어진 불행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심지어 그것을 의욕할 수 있을 때 그러한 불행에의 의지 속에서 비극의 본질이 드러난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이러한 불행의 의지는 인간의 존재론적 불행을 의욕하는 데서 특별한 존재, 사유경험을 동반한다. 즉 언어결여의 경험에서 존재가 사유임을 발견하는 사유경험을 한다는 하이데거의 게오르게 신론에서처럼, 불행에의 의지는 일종의 무를 통해 존재를 헌시하는 사유경험을 동반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T.하디의 [테스]에 대한 비극의 해석학은, 비극의 본질이 악의 신비시학에 있고, 그러한 신비는 윤리적 의미에서 불행을 의욕하는 수 있는 존재경험에서 이루어진다고 결론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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