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piration

푸른 밤 - 나희덕

iamsera 2017. 9. 8. 11:20


푸른밤


나희덕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었던

그 무수한 길도

실은 네게로 향한 것이었다


까마득한 밤길을 혼자 걸어갈 때에도

내 응시에 날아간 별은

네 머리 위에서 반짝였을 것이고

내 한숨과 입김에 꽃들은

네게로 몸을 기울여 흔들렸을 것이다


사랑에서 치욕으로,

다시 치욕에서 사랑으로,

하루에도 몇번씩 네게로 드리웠던 두레박


그러나 매양 퍼올린 것은

수만 갈래의 길이었을 따름이다

은하수의 한 별이 또 하나의 별을 찾아가는

그 수만의 길을 나는 걷고 있는 것이다


나의 생애는

모든 지름길을 돌아서

네게로 난 단 하나의 에움길이었다






출처: 나희덕, 그곳이 멀지 않다, 문학동네, 2004


  • 그곳이 멀지 않다 지식인의 서재 추천도서
    나희덕(시인) 저 | 문학동네 | 2004.05.20
    별점
    10 | 네티즌리뷰 48건 | 도서구매  8,000원 → 7,650원(-4%)
    소개  마음결을 따라가는 섬세한 언어감각과 투명한 서정을 담아낸 나희덕 시인의 시집. 높지 않고 나직하지만, 살아 있는 존재의 울음소리와 그 속에 흐르는 시를 예민하게 감지해 낸 작품집이다. 시인은 시에 함부로 뜨거운 고통과 슬픔을, 그 뜨거운 상징을 섣불리 쏟아 붓지 않는다. 밝고 섬세한...


고등학생 때부터 좋아하는 시. 이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