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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경 시인, 독일서 암투병 끝 별세…

iamsera 2018. 10. 4. 13:29



독일에서 말기암으로 투병 중이던 허수경 시인이 3일 별세했다. 향년 54세.

이 티스토리에도 썼었지만 허수경 시인의 시를 참 좋아했다.

<포도>란 시를 가장 좋아했지만, 오늘은 이 시를 꺼내 읽어본다.






 포도나무를 태우며 


   허수경

  

  

   서는 것과 앉는 것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습니까

   삶과 죽음의 사이는 어떻습니까

   어느 해 포도나무는 숨을 멈추었습니다

  

   사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살았습니다

   우리는 건강보험도 없이 늙었습니다

   너덜너덜 목 없는 빨래처럼 말라갔습니다

  

   알아볼 수 있어 너무나 사무치던 몇몇 얼굴이 우리의 시간이었습니까

   내가 당신을 죽였다면 나는 살아 있습니까

   어느 날 창공을 올려다보면서 터뜨릴 울분이 아직도 있습니까

  

   그림자를 뒤에 두고 상처뿐인 발이 혼자 가고 있는 걸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물어봅니다

   포도나무의 시간은 포도나무가 생기기 전에도 있었습니까

   그 시간을 우리는 포도나무가 생기기 전의 시간이라고 부릅니까

  

   지금 타들어가는 포도나무의 시간은 무엇으로 불립니까

   정거장에서 이별을 하던 두 별 사이에도 죽음과 삶만이 있습니까

   지금 타오르는 저 불길은 무덤입니까 술 없는 음복입니까

  

   그걸 알아볼 수 없어서 우리 삶은 초라합니까

   가을달이 지고 있습니다

     

     

시집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허수경(시인) 저 | 문학과지성사 | 2016.09.28
    별점
    8 | 네티즌리뷰 57건 |   8,000원 → 7,200원(-10%)   5,040원
    소개  우리말의 유장한 리듬에 대한 탁월한 감각, 시간의 지층을 탐사하는 고고학적 상상력, 물기 어린 마음이 빚은 비옥한 여성성의 언어로 우리 내면 깊숙한 곳의 허기와 슬픔을 노래해온 시인 허수경이 여섯번째 시집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를 출간했다. 2011년에 나온 『빌어먹을...









정거장에서 이별을 하던 두 별 사이에도 죽음과 삶만이 있습니까.

그래서, 그래서 우리 삶은 초라합니까.

어느 해 포도나무는 숨을 멈추었고, 가을달은 지고 있습니다.


부디 좋은 곳으로 가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