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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 맨즈필드, <가든파티> 서문

iamsera 2017. 6. 10. 08:08


서문

내가 쓰는 모든 것은 나의 존재다

로나 세이지




우화와 동화가 구두로 전해진 오래된 이야기라면, 글쓰기와 읽기의 외로움을 반영하는 단편소설은 근대에 들어 생겨난 형식이라고 하겠다. 단편소설이라는 형식은 20세기 초 모더니즘 운동과 더불어 강박적인 특성을 지니게 되었다. 캐서린 맨스필드와 제임스 조이스, D.H.로렌스 등의 작가들은 지면상의 강렬한 기교를 통해 단편소설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으며, 이들의 단편소설 중에는 관습적인 의미에서 소설의 구성 용소를 거의 갖추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특히 캐서린 맨스필드는 단편소설을 자신의 유일한 글쓰기 형식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단편소설이라는 형식 안에 당대의 다른 작가들보다 더 많은 것을 집어넣으려 했다. 그러나 그녀는,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보면 "나처럼 근대의 에피소드적인 사람들이 몹시 무능한 얼간이 같다."며 농담 조로 언급하면서 자신의 시도를 후회하기도 했고, 임종을 앞둔 시점에는 자신이 만들어낸 모든 것이 "새장 속에서 자란 새처럼 작은 이야기들"이었다고 오랜 친구에게 한탄하기도 했다. 그러나 맨스필드의 이런 불만이 바로 그녀의 소설에서 자양분이 되고 특별한 예리함을 제공했음은 부인할 수 없다. 더욱이 그녀는 다른 곳에서는 거의 편안함을 느끼지 못하고 오로지 단편소설이라는 형식에서만 기쁨과 편안함을 느꼈다.

맨스필드는 1908년 열아홉 살의 나이로 뉴질랜드의 유복한 사회를 떠난 이후 죽을 때까지 영국 문학계에서 일종의 변방인의 자리에 머물렀다. 그녀는 주변의 지인들과 열정과 긴장, 경쟁, 불신의 관계를 유지했다. 당시 문학계의 여성들은 대개 내조자, 후원인, 시적 영감의 대상 또는 정부에 불과했지, 그녀가 되고 싶어 하던 독자적인 예술가는 아니었다. 더욱이 이 자유분방한 문학계에서조차 오래된 사회 계층 간의 차별이 끈질기게 이어졌는데, 식민지 출신이며 아버지가 자수성가한 은행가라는 그녀의 배경은 '지방 출신'과 '장사치'라는 기존의 속물에 대한 고정관념에 부합했다. 그녀와 소외감과 친밀감이 교차되는 관계를 간간이 지속해 오던 여성 작가 버지니아 울프와의 관계를 돌아보면 맨스필드가 영국인의 정서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재확인해 볼 수 있다. 1917년 남편 레너드와 함께 맨스필드를 저녁 식사에 초대했던 울프는 일기에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사람들이 K.M.을 보면서 거리르 배회하다 온 사향고양이 냄새가 풍긴다는 첫인상을 받지 않기를 우리 부부는 바랐다. 사실 나는 그녀를 처음 만나고 나서 그 평범함에 꽤 충격을 받았다. 그녀가 내뱉는 말들은 대단히 현실적이고 싸구려였다. 하지만 이런 느낌이 어느 정도 줄어들고 나면 그녀는 대단히 지성적이고 난해한 모습으로 우정에 보답한다. 


울프가 사사로이 잔인함을 내비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 글은 맨스필드의 신체적 존재감이 대단히 강력했다는 것을 알려 준다. 선구적인 맨스필드 학자이자 전기 학자인 안토니 알퍼스는 울프의 과민 반응에 대해 의구심을 표명했다. 1980년에 그는 [생애(Life)]에서 캐서린이 값비싼 프랑스 향수를 좋아하고 옷도 아주 잘 입었다고 말한다. 울프부부가 향수를 뿌리는 것 자체를 저속하다고 여겼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는 '감각의 삶'을 지향하는 맨스필드의 열정이 울프의 예민한 후각을 자극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러나 알퍼스의 결론은 지나치게 순화된 편이다. '사향'이란 과거 향수 제조에 사용되었던 고양이의 사향선 분비물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셰익스피어의 [좋으실대로(As You Like It)]에서 추잡한 터치스턴이 "사향이 타르보다 출생이 비천하며 고양이의 아주 깨끗하지 못한 분비물"아가 때문에 사향을 이용해서 달콤한 향을 내는 가신들이 겉보기만큼 깨끗하지 않다고 설명하던 부분(3막 2장)을 울프가 기억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함축된 의미를 조합해 보면, 울프는 맨스필드를 자기 영역을 표시하는 수고양이인 동시에 발정한 암고양이 같다고 여기면서 혐오감과 매력을 함께 느꼈을지도 모른다. 물론 여기 섞인 사회적 메시지와 성적인 메시지 때문에 맨스필드의 "말들"이 "현실적이고 싸구려"로 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다음 문장에서 맨스필드는 "지성적이고 난해한" 인물, 즉 내면적인 삶이 있는 곡독하고 매력적인 새로운 종류의 고양이로 변모한다. 1920년의 일기에서 울프는 동일한 감정을 다시 한 번 피력한다. "그녀는 다정하지만 고독하고 침착하며 언제나 외롭게 주시하는 고양이이다." 울프는 맨스필드에 대해 이런 감정을 느끼면서 자신과 그녀가 몹시 가까운 사이라고 느꼈다. "...... 우리는 고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고, 나는 그녀가 내가 들어본 적이 없는 방식으로 나의 감정에 대해 표현한다는 것을 알아챘다." "문학뿐만 아니라 다른 면에서도 그녀가 나와 '비슷한' 사람이라는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글쓰기에 대해 이처럼 육체에서 유리된 방식으로 다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같은 해에 맨스필드는 울프에게 "당신은 내가 작품에 대해 말하고 싶은 유일한 여성입니다."라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맨스필드가 죽고 몇 년 후인 1931년에 버지니아는 바이터 색빌-웨스트에게 다음의 편지를 보냈다.


나는 그녀를 싸구려라고 생각했고 그녀는 내가 잘난 척한다고 여겼지만, 그래도 우리는 오로지 글쓰기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라도 서로 만나야 했어요..... 당신의 말대로 그녀에게는 열정과 공명이 있었죠. 다시 말해서 그녀는 자신만의 특성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스며들 수 있었어요. 그 싸구려 향기를 맡고 나면 콧구멍에서 악취가 풍기곤 했죠......


맨스필드가 죽고 8년이 지난 후에도 울프는 그녀를 떠올리자마자 길 잃은 고양이의 성적인 모험이라는 충격적인 야생의 냄새를 맡은 것 같다. 사실 두 사람 모두 글쓰기에 헌신했기 때문에 이런 경험은 대단히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울프에게 맨스필드는 누군가의 여자 친구가 아니라 경쟁 작가였다. "육체에서 유리된" 방식으로 작품에 대해 말하기를 좋아했던 울프에게도 맨스필드의 육체란 그다지 쉽게 잊힐 만한 것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