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오늘

기다림

iamsera 2021. 4. 28. 02:32

분명 울고 있지 않는데도 울고 있는 빌리.

화병에 꽃을 꽂을 여유 따위 없는 지친 마음으로 미술관엘 간다. 평일의 전시가 으레 그렇듯 방해 받지 않고 홀로 감상을 한다. 오늘 비가 온다고 했었나 우산이 없는데. 설렁설렁 작품들 사이를 거닌다. 소리가 나지 않는 카메라로 전시장 일부를 담는 동안에도 나는 다른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다. 옷걸이 팔천개를 엮은 조형물 앞에 우두커니 서서 작가의 의도와 작품의 의의보다는 그저 이걸 만드는데 얼마나 걸렸을까 한다. 우리는 시간의 힘을 빌려 많은 것을 하지만, 시간을 들여도 해결될 수 없는 것도 있다 는 진리를 나이를 먹어가며 차츰 깨닫는다.
맨투맨 손목의 앙증맞은 체리에 시선을 둔다. 어리다. 그의 SNS엔 애들은 싫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그래서 난 재잘거리는 대신 말을 아꼈고 친구에게 하듯 장난을 치지도 못했다. 옷도 어른스럽게 입었고 평소에 신던 운동화 대신 새로운 구두도 사 신었다. 그게 나였는지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전시장을 빠져나오는데 직원이 날 부르는 소리에 에어팟을 빼고 보니 손에 내가 놓고 간 카드를 쥐고 있다.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밖으로 나오니 하늘은 어느새 비를 한바탕 쏟을 채비 중이다. 차를 가지고 나올 걸. 버스 정류장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한다. 그냥, 어떤 차는 조수석에서도 안전벨트를 하지 않으면, 알림음이 울린다던가, 4월 생은 양자리라던가, 같은 것들, 영영 알지 않았으면 좋았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