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piration

몇 페이지 12

iamsera 2021. 7. 21. 13:17

고독한 노동으로 단련된 사람의 눈. 진지함과 장난스러움, 따스함과 슬픔이 부드럽게 뒤섞인 눈. 무엇이든 섣불리 판단하지 않고 일단 들여다보겠다는 듯, 커다랗게 열린 채 무심히 일렁이는 검은 눈.

_한강, 희랍어 시간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노력하는 이 행위 자체가 우리 인생을 살아볼 만한 값어치가 있는 것으로 만든다. 

_김연수, 세계의 끝 여자친구

 


 

사과하지 않겠어요
또 끝내 나를 내보이지 않은 것에 대해
그저 그런 기분이라는 이유로 집안에 틀어박혀 전화도 받지 않았던 것에 대해
그게 무슨 의미냐는 질문에 침묵으로 일관했던 것에 대해
그런 날이면 미친 듯이 써 내려간 보잘것 없는 글들에 대해
또 그것을 세상에 내보인 것에 대해

사과하지 않겠어요
당신을 사랑한다는 사실에 대해
아직도 꿈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해
여태 희망을 간직하고 있는 것에 대해
운명과 적당히 타협하지 못한 것에 대해
지금도 사랑을 믿고 있다는 것에 대해

​사과하지 않겠어요
내가 몰래 품었던 절망과 좌절과 후회에 대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슬픔에 대해
몇 번이나 되풀이해 꾸었던 그 꿈들에 대해
꿈 속에서 내가 행복했다는 사실에 대해

사과하지 않겠어요
나의 차가움과 뜨거움에 대해 
서투른 걸음과 부족한 노래와 몹시도 엉성한
미래의 계획들에 대해
지나간 날들을 돌아보지 않는 것에 대해

_황경신, 사과하지 않겠어요

 


 

“You are the knife I turn inside myself; that is love. That, my dear, is love.”
그대는 내 안을 파고드는 칼이요. 그것이 바로 사랑.

_Franz Kafka, Letters to Milena

 


 

이제 보여줄 수 있는 건
뒷모습뿐, 눈부신 것도
등에 쏟아지는 햇살뿐일 것이니
도망치는 동안에만 아름다울 수 있는
길의 어귀마다 여름꽃들이 피어난다

_나희덕, 기억의 자리

 


 

이렇게 다정한데 우린 너무 떨어져 지내는군요

_곽은영, 불한당들의 모험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