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piration

몇 페이지 2

iamsera 2017. 5. 12. 13:33


나는 따스한 대낮에 언덕 위의 작은 호수를 향해 돌팔매질을 했습니다. 경쾌한 포물선으로 날아가 가라앉는 나의 우울들. 물론 내 예전의 우울감들은 늪과도 같은 성질을 지녔었기에 그것을 깔끔히 떼어내기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때 서쪽으로부터 당신이 불어온 겁니다. 살랑거리는, 딱 그정도 세기의 바람 같던 사람. 과격한 바람은 사물을 요란스레 흐트러뜨리기만, 또 미약한 바람은 아무런 변화도 일으키지 못했지만 당신은 전자도 후자도 아닌 딱 살랑거리는 세기의 바람이었습니다. 가끔은 살랑인지 사랑인지 헷갈리는 어감을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게 내 우울들은 당신에 의해 응고되었고 내 손에 의해 던져졌습니다. 해가 지고 언덕을 내려갈 땐 꼭 우리가 숲의 주인이 된 것만 같아, 우리는 잠시 입도 맞추었습니다. 숲처럼 향긋한 맛을 느끼며, 당신의 침엽수림 같은 머릿결을 만지고 있자니, 나는 굳이 높은 곳에서 세상을 내려다볼 필요가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야경이 근사했습니다.

- 오휘명 2017년 02월 03일 17시



그러나 젊음처럼 외고집을 부리는 것이 또 어디 있을까? 무경험처럼 맹복적인 게 또 어디 있을까? 로체스터 씨가 나를 보아주건 보아주지 않건, 그분을 다시 볼 수 있는 것만 해도 기쁜 일이라고, 젊음과 무경험은 단언하였다. 그리고 또 말하는 것이었다. '어서 가자! 어서! 곁에 있을 수 있을 때 곁에 있어야 해. 이제 앞으로 며칠, 기껏해야 몇주일, 그리고 그분과는 영 이별이란 말이야!' 그리고 나서 나는 새로 생겨난 고민 - 내것으로서 가지고 싶지도 않고 키우고 싶지도 않은 흉측한 그것 - 을 묵살해 버리고는 달음질쳤다.

- 샬럿 브론테, <제인 에어>



우리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어떤 사람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생각이다. 이는 우리가 만든 개념이므로 결국 우리는 우리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책>



나는 누구도 사랑할 수 없는 종류의 사람이었다. 내가 사랑할 수 있는 것은 나 자신 뿐이었다.

- 한강, <검은 사슴>



아무리 잘 안다고 생각한 사람이라도,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일지라도, 타인의 마음을 속속들이 들여다본다는 건 불가능한 얘깁니다. 그런 걸 바란다면 자기만 더 괴로워질 뿐이겠죠. 하지만 나 자신의 마음이라면, 노력하면 노력한만큼 분명하게 들여다보일 겁니다.

- 무라카미 하루키, <여자 없는 남자들>